Page 49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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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지향점이 하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활 쏘는 사람의 몸이 활이 된다는 것은 활 또한 사람의 몸이 된 상태일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물아일체ʼ의 상태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상태를 해탈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활 쏘는 사람이 만작의 상태에
            서 만작인지도 잊고 흔들림 없이―활의 본래 성품이 되어―시위를 놓아

            야 하는 순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흔들림 없이 놓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활과 활 쏘는 사람의 분리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마침내 해

            탈일까요. 아닙니다. 아직 해탈의 길은 아득합니다. 과녁이 남아 있기 때
            문입니다.(적어도 여기까지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작한 궁체에서 발사된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갑니다. 명중이든 아
            니든 둘 중 하나입니다. 명중이면 해탈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반대로 과
            녁을 벗어났다면 해탈과 거리가 먼 것일까요? 그것을 판단할 사람은 또

            한 누구일까요. 이러한 판단에서 선지식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여하튼
            어려운 문제입니다.




              ‘타력’의 활쏘기


              오늘날 활쏘기는 전쟁과 사냥의 살상 행위라는 태생적 목적과 거리가

            멉니다. 취미(오락), 스포츠, 수양으로 행해집니다. 궁도라는 말이 궁술보
            다 자연스럽게 쓰이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의

            전통적 활쏘기를 (양궁에 상대하여) 국궁이라 합니다. 국궁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궁도’는 일본에서 쓰는 말이므로 멀리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그쪽 집안 사정이므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살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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