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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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품에 안고 있는가?” 일갈했다. 법안은 납작 엎드려 큰 절을 올리

           며 “스님!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법을 청했다.
             법안은 지장원에 머물며 원주 스님의 지도를 받아 개안開眼의 경지

           를 터득한다. 이후 선기禪機가 날로 일취월장日就月將하더니 마침내 ‘법
           안종’을 창설하게 된다. 법안을 이렇게 만든 원주가 바로 나한계침 선사

           다. 만일 법안이 창피함에 다시 원주 보기를 회피했다면 중국불교의 법
           계法系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법안은 선지식을 대하는데 있어서 대

           분발의 힘을 발휘한다. 자신의 허약한 법기法器를 단단히 고치고자 창피
           함을 무릅쓰고 원주를 다시 찾아 간 것이다. 말하자면 원주의 법거량에

           서 그가 예사 인물이 아님을 간파했다. 원주는 실제로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의 법맥을 이은 수제자로 당대唐代 복건성 지장원과 나한원에서

           선풍을 크게 진작시킨 인물이다. 나한계침 역시 역방 중 현사사비를 만
           나 깨침을 증득했다.



             경계를 허물어야 큰 세계 열려



             법안과 스승 계침의 공통점은 이처럼 제방을 두루 참방하며 큰 선지식

           을 만나 깨침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사의 편력을 놓고 봤을 때 발
           은 경계를 허무는 상징성을 띠게 된다. 발이 무엇인가? 바깥의 빛과 공

           기와 사물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게 발이다. ‘그물’이 나를 가두는 족쇄라
           면 ‘발’은 바깥의 경계로부터 나를 차단하는 가림막이다. 법안 선사는 이

           발을 내세워 얻고 잃음의 선지를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이다.
             ‘그물’과 ‘발’을 걷어내야만 세상을 두루 편력할 수 있다. 운수납자란

           단순히 바람 부는 대로 발길을 옮기는 게 아니다. 더 큰 문명과 더 큰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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