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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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4호 | 선시 산책 13
누가 세월 밖의 노래를 따라 부르나
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문학평론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비롯하여 2,200여 수의 많은 시를 남겼다. 그는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보
위에 오른 수양대군(세조)의 계유정란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통곡하고 유
서를 모두 불태운 뒤,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법명을 ‘높고
눈 덮인 산’이라는 의미의 설잠雪岑이라 하였다. 이후 그는 전국을 유랑하
고 은거하면서 잘못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그것을 시문학
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삶을 산 설잠의 시론의 핵심은 선심禪心이 곧 시
심詩心이고, 시심詩心이 곧 선심禪心이다. 다음의 시는 설잠의 이러한 선심
의 시적 변용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시구는 언제나 한가로움 속에서 얻고 시구매인한리득 詩句每因閑裏得
선심은 거의 다 고요함 속에서 끌리네. 선심다향정중견 禪心多向靜中牽
청산은 억지로 어리석은 이를 보고 웃고 청산강대치연소 靑山强對癡然笑
명월은 누가 나누어 작은 샘에 떨어졌나? 명월수분낙소천 明月誰分落小泉
시심과 선심은 모두 한가롭고 고요한 속에서 얻어 질 수 있음을 밝히
고 있다. 때문에 설잠의 시가 지향하는 근원적인 경지도 바로 선이 추구
하는 세계와 다르지 않다. 청산은 항상 여전히 말없이 존재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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