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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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잠의 심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눈길로 그대 찾아 홀로 지팡이 끌고 가니

              설로심군독장려雪路尋君獨杖藜
              그 속의 참된 뜻 있어 깨달았다 도로 매혹되네.

              개중진취오환미箇中眞趣悟還迷
              유심이 도리어 무심의 부림을 당하여

              유심각피무심사有心却被無心事
              세 별 지고 달이 질 때 까지 배회하였네.

              직도참횡월재서直到參橫月在西



             자신의 호를 ‘매월당’이라고 했던 설잠에게 매화와 달은 중요한 시적
           소재였다. 실로, 그에게 달빛이 없는 매화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매화는 어린 시절 그 자신이 추구했던 현실이었고, 달빛은 매화를
           한층 고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빛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는

           탐매행探梅行을 즐겨하고 많은 탐매 시를 지었다. 눈 덮인 매화나무 가지
           에 처음 피는 매화를 찾아 나선 화자는 자신을 유심有心의 존재로 생각하

           고 있다. 마음속에 근심이 꽉 찬 상황을 그렇게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상
           황에 비해 매화는 무심無心의 존재,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화자는 그 무심한 존재(매화)에게 부림을 당하여 저녁별
           이 지고 서녘에 달이 질 때 까지 배회하고 말았다. 무심한 존재에게 부림

           을 당했다고 했는데, 이는 실제로 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심한
           존재에게 매혹되어 자신도 모르게 무심의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어지러운 시대 상황에서 취하는 설잠의 ‘자기 확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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