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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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어느 날, 선정에 드는 모습에서 잘 표출되고 있다.



              창에 가득 비친 붉은 햇살 사람마음 허락하니

              만창홍일가인심滿窓紅日可人心
              방장의 유마 거사 도력이 심오하구나.

              방장유마도력심方丈維摩道力深
              말하지 않고 옷깃 여며 엄히 꿇어앉는데

              불어정금위좌처不語正襟危坐處
              뜰에 가득한 솔 소리 이것이 진정한 벗이라네.

              일정송성시지음一庭松聲是知音


             유마거사의 ‘침묵’의 고사를 인용하여 깨달음을 소나무 소리에 의탁하
           여 지은 백미의 시이다. 첫 행에서는 화자는 창에 가득 비친 붉은 해를

           바라보고 마음의 평상심을 느낀다. 2행에서 ‘유마거사의 도력이 심오하
           다’고 한 것은 유마거사가 수보리존자의 물음에 ‘침묵’한 것이 천둥보다

           큰 울림이었다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고사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곧 깨달
           음이란 언어로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한계성을 말한다. 3행의 ‘말하지 않

           고 옷깃 여미어 꿇어앉는다’는 것은 무설설無說說의 가르침, 곧 교외별전
           敎外別傳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화자는 선정에 들어 있던 중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가 뜰에 가득하고, 이는 곧 친구의 소리라고 언급
           하고 있다. ‘솔 소리’를 벗이라고 여기는 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친연성을

           말해준다. 참으로 선심과 시심이 멋진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시이다.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면, 일체의 분별과 망상이 없고, 구속 또한 없으

           며, 진속일여의 경지 그대로이다. 그래서 여여한 삼라만상은 모두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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