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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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至難한 구도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설잠은 매화의 한결같은 높

            은 지조에 어느 꽃도 감히 넘나 볼 수 없는, 맑고 그윽한 자태를 이렇게
            찬탄하고 있다.



               꽃필 때 높은 품격 꽃 중에 빼어나고               화시고격수군방花時高格秀郡芳

               열매 맺어 조화이루면 음식 맛 향기롭네.  결자조하정미향結子調和鼎味香
               한결 같은 큰 절개를 지니고 있어                 직도시종존대절直到始終存大節

               꽃들이 어찌 감히 그의 곁을 엿보리오.              중방나감규기방衆芳那敢竅其傍


              매화는 청빈하고도 깐깐한 선비의 기상을 표상한다. 설혹 매화는 가난
            하여도 일생 동안 그 향기를 돈과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설잠은 매화의

            일생에 자신의 청빈한 정신을 비유하고 있다. 매화꽃이 필 때 그 품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꽃향기가 지고 난 다음에 그곳에 열매가 자라 익

            으면서 꽃향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열매[매실梅實]로 간을 맞추면
            음식 맛이 한결 향기롭다는 것이다. 매실로 음식 맛을 조화롭게 하는 것

            은 원숙한 경지에 이른 재상이 원융圓融의 관계를 이끌어 내는 모습을 말
            한다. 이는 곧 설잠이 지향하고자 했던 원융의 이상적인 삶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설잠은 자신의 방랑을 스스로 ‘탕유蕩遊’라고 했지만 그것은 엄연히 자

            신의 본래성을 찾는 고독한 방랑길이었다. 설잠이 운수행각을 하면서 좋
            은 경치를 만나는 대로 시를 읊고 구경도 하고자 했던 것은, 현실의 구속

            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시
            정詩情과 선적 사유의 절묘한 결합은 운수시의 아름다움을 낳는다. 설잠

            의 이러한 자연친화적 선적 사유는 그가 금오산 용장사에 머문 지 1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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