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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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따라서 억지로 어리석은 자를 보고 웃을 뿐이다. 그리고 밝은 달을
누군가가 나누어 작은 우물에 떨어뜨린 것으로 보고 있는 화자에게 시와
자연은 또 다른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한가로움과 고요 속에서 배태
되고 형성된 설잠의 선심의 시심화詩心化는 다음의 시에서 한결 도드라져
보인다.
그대 푸른 등평상을 두들기게 여격녹등상汝擊綠藤床
나는 노래 한 곡조 지으리라. 아작가일장我作歌一章
그대와 나 각기 보전하니 이여각보도爾余各保到
신세가 모두 별빛 같네. 신세여성망身世如星芒
별빛처럼 영롱한 선심을 시로 담아내고 싶다는 소망이 담지되어 있다.
화자는 나와 상대가 모두 진솔한 마음을 가질 때 모두 별빛 신세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세상 만물은 저마다 지켜야 할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서
로 침해하지 않으며 상생하고 어울리며 살아간다. 그러니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도 없고, 각자의 위치에서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즉상
입’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설잠은 두두물물마다 본 모습을
지니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사사무애의 화엄세계를 거기에서 보
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의 경지요 ‘상즉상입’의 화엄적 인식이다.
매화는 봄의 전령사로 불린다. 황벽희운(814~850)은 “뼈 속에 스며드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 /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 얻을 수 있으리오[불시
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라며 매서운 추위 속에 피
어난 매화 향기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차가운 이른 봄, 그 추위에 오히려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를 찾아 나서는 일은 매화의 모습을 닮고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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