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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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언젠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동생에게 ‘엄마가 사업을 했으면 엄청

           성공하셨을 거야’ 했더니 ‘우리가 힘들었겠지, 엄마가 집에 안계셨으면.’
           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재능은 자식들을 안정적으로 키우

           는 데 쓰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언제나 멋쟁이였다. 시장에 나가서도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잘

           골라 입었고, 일 년에 한두 번쯤은 양장점에서 옷을 맞추어 입었다. 한번은
           바바리코트를 맵시 있게 입으셨기에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보니 ‘양장점에

           서 맞추었어. 이제 바바리코트는 마지막일 것 같아서.’ 하셨다. 칠십이 넘
           었을 때일 것 같은데, 어머니는 그 후로도 바바리코트를 한두 번 더 사 입

           으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옷을 새로 사 입으면 노인정 할머니들의 스타일
           이 바뀌곤 했다. 똑같은 것으로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할머니들의 심부름

           을 종종 했던 어머니다. 심지어 반지 하나, 팔찌 하나를 사도 다들 똑같은
           것을 사기를 원했다고 하니, 어머니는 동네 패션의 리더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내가 젊어서 애들을 키울 때 옷에 신경을 못 쓰고 사는 걸
           안쓰러워했다. 서울 우리 집에 오시면 늘 마트에 들러 옷을 한두 벌 사주곤

           하셨다. 어느 해 겨울, 두터운 코트를 하나 사주시곤 ‘얘, 세상이 다 따뜻해
           진 것 같다.’ 하셨던 말씀을 잊을 수 없다. 작은 아이를 낳고 나자, 피부를

           잘 가꾸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영양크림을 사 오셨던 어머니다.
             젊은 시절, 내 잘못된 편견으로 인해 한참 동안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낸 적이 있다. 무심코 어머니와 통화중에 ‘사는 게 하나도 재미가 없네, 엄
           마.’라고 했는데, 자식을 키워보니 어머니가 그때 얼마나 마음이 쓰리셨을

           까 싶다. 자식이 행복해하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걸 자식을
           키워보고 나서야 알았으니, 이제 와서야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머니는 일흔 전 까지는 고추장, 된장, 간장을 직접 담가서 보내주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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