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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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선사는 각기 다른 암자의 암주가 손을 들어 보이는 똑같은 응답을

           했음에도 하나는 ‘미치지 못한다’며 폄훼하고 또 다른 하나에 대해선 극찬
           했다. 왜 그랬을까 원인은 꾸밈에 있었다. ‘물이 얕아 배가 머물 수 없다’며

           수모당한 암주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치장을 했다. 치장은 번뇌에 해
           당하며 자신을 속박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능통능란하고 살활

           자재하다’며 칭찬받은 암주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 인위
           적 힘을 빌려 외양을 가꾸지 않더라도 수행이 수승하므로 눈빛이 형형하

           다. 수행이 잘 된 스님들은 삭발염의의 모습이지만 거기에서 남다른 자태
           가 빛으로 드러난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게에 압도되면서도 수행자다

           운 면모에 외경심畏敬心이 발휘된다.



             우연히 만들어지는 인생이란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자폐인으로서는 최초 공식적으로 라이브 드로잉 작
           가로 등단한 한부열씨가 주목받고 있다. 그가 작품성을 대중들에게 인정

           받는 것은 단순히 자폐증에 대한 동정이 작용해서가 아니다. 그의 그림 소
           재는 일상의 경험들을 옮긴 것인데 작가의 꾸밈없는 천진난만한 시선이

           고스란히 작품 속에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준비하
           거나 꾸미는 시간이 없다. 마음 내킬 때 주저 없이 있는 그대로 떠올린 영

           상을 화지 위에 옮긴다. 그는 1984년생이다. 2012년 그의 나이 29세 때 처
           음 붓을 잡았다고 하니 화력畵歷은 이제 겨우 7년차다. 그럼에도 그의 그

           림이 대중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은 꾸밈이 없는 천진난만함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걸레 스님 중광이 꾸미지 않고 그려내는 그림을 선화禪畵라고

           반겼던 것과 흡사하다. 한부열 작가가 더욱 대중들에게 각광받는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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