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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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처럼 『중론』에서 중이란 불교사상의 근원이자 원천이기 때문에
길장은 ‘중’이라는 이치로 ‘거두어지지 않는 가르침이란 없다[무교불수無敎不
收]’고 보았다.
도대체 중이 무엇이기에 광대한 불교사상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일
까? 길장은 ‘중中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행하는 도[소행지도所行之道]’라고
했다. 중으로 표현되는 중도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이 행한 도라
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행한 도가 중이라면 중은 불법의 근
간이 분명하다. 불자는 부처님의 삶을 사표로 삼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불자들은 부처님이 행한 중의 도를 행위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불보살
들이 행한 도를 자신의 삶 속에서 구현하는 것이 불자의 삶이며, 중을 실
천하는 것이 불법의 모든 이치를 받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이 ‘중론’이라는 제목에 대한 풀이였다면 ‘중관中觀’이라는 것에 대
해서도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길장은 중관에서 “관觀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관하는 마음[능관지심能觀之心]”이라고 했다. 중이 불법의 근본 이치
이자 모든 불보살님들이 행한 도라면, 관이란 불보살이 세상과 존재를 보
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여기서 말하는 ‘관觀’이란 단순히 어
떤 대상에 대한 ‘봄’이 아니라 ‘관법觀法’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중관中觀이
란 ‘중의 이치에 의해 성취된 봄[관觀]’이라는 것이다. ‘중관’은 중의 이치에
입각한 봄이며,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은 바로 이 중에 대한 명확한 봄,
중의 이치에 대한 관조를 통해서 깨달은 마음이다.
그렇다면 논論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길장은 “모든 부처님이 관
觀하여 마음에서 깨치고 입으로 설명한 것을 경經이라 하며, 보살이 관觀
하여 마음에서 깨치고 입으로 설명한 것을 논論이라 한다.”고 했다. 모든
부처님은 중에 대한 바른 관조, 즉 중관을 성취하여 마음을 깨치고, 그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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