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P. 61
주 볼썽사나웠을 것이다. 이에 고양이를 죽임으로써 일체가 무상함을 가
르쳤다. 주지 선출과 관련한 논의를 백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원
문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정말로 고양이를 죽였을 수도 있다. 수십 년 동
안 누워서 자지 않거나(장좌불와), 물구나무를 서서 죽거나, 워낙 기상천외
한 일을 자주 벌이는 선승들이니 말이다.
정황상 짚신을 머리에 이는 행위가 사태의 해결책이다. 남전은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 후회하지 않았을 터이고, 동당과 서당은 살생이라는 커다
란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 화해했을 터이다. 조주가 발에 신어야 할 짚신
을 머리에 인 것은 대개 ‘본말의 전도에 대한 비판’으로 풀이한다. 깨달음
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출가자들이 한낱 잿밥에 한눈을 팔았다는. 남전의
행동 역시 비난받을 만하다. 빈대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운 격이
다. 개인적으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신이 한낱 짚신이라도 나는 높이
받들겠다’는 표현이자 다짐으로 읽는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결과는 되돌
릴 수 없다. 스승님이 비록 참담한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무어라 타박하
지 않겠다.’ 조주는 남전을 이용하려 존경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
한 것이다. 진실하고 남자답다. 하기야 인간관계의 노하우를 배울 것이라
면 휴대폰이나 검색했지 선어록까지 들추진 않았을 것이다.
나를 희생하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마냥 기분이 나쁘지는 않
다. 거기서 사랑이 싹 트기 때문이다. 오늘도 누군가 짚신으로 내 머리를
밟는다. 나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 않고, ‘좋
은 일을 했다’라고 하겠다.
곰글 1975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9권의 불서佛書를
냈다.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