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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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5호 | 선시 산책 14



                “도인의 찻 자리 이보다 좋을 수 없어”



                                    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문학평론가





             시·서·화·차에 뛰어나 4절이라 불렸던 초의선사(1786~1866)는 15세에

           나주 운흥사의 벽봉민성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19세 때 해남 대흥사로 가
           는 도중 영암 월출산에 올라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고 일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20세 되던 해에 대흥사 완호윤우로부터 구
           족계를 받고 초의艸衣라는 법호를 받았다. 스승이 초의라는 법호를 내린

           것은 그의 귀기어린 천재성과 번득이는 재주를 완곡하게 감추어 주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초의의 ‘선다일여禪茶一如’ 사상이 꽃피운 곳은 대흥사 뒤쪽 일지암一枝
           庵이다. 선사는 이곳에서 홀로 40여 년 동안 은거하며 차와 더불어 지관止

           觀에 전념하였다. ‘일지’는 『장자』 ‘소요유편’에 있는 ‘뱁새가 깊은 숲에 보
           금자리를 마련할 때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다[초료소어심림불과일지鷦

           鷯巢於深林不過一枝]’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초의는 일지암에
           서 홍현주(정조의 사위)의 요청으로 『동다송』을 저술하였다. 여기에서 차의

           기원과 차나무의 생김새, 차의 효능과 제다법, 우리 차, 즉 동차東茶의 우
           수성을 노래하고 있다. 다음은 『동다송』의 첫 구절이다.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를 귤 덕과 짝 지우니  후황가수배귤덕后皇嘉樹配橘德

              명을 받아 자리 옮기지 않고 남녘땅에 자라네  수명불천생남국 受命不遷生南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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