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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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놀라 달아나 버렸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명랑明朗 법사이다. 명랑은 선덕왕 원년
(632)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선덕왕 4년(635)에 귀국하였다고 한다. 한편,
『삼국유사』 권2 ‘문호왕 법민’조에는 문무왕 대에 신라로 돌아왔다고 하여
그의 귀국 연대에 대한 이견이 있기도 하다. 명랑은 우리나라 최초의 밀
교종파인 신인종神印宗을 개창한 초조初祖로 알려져 있다. 신인종은 신라
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세워졌으며, 그것은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
으로 적이나 병 같은 재앙을 물리치는 밀교 계통의 불교였다는 것이 일반
적인 견해이다. 문두루란 산스크리트 무드라Mudra의 음을 딴 것으로 한
자로는 신인神印이라 한다.
당나라의 침공을 맞아 명랑은 낭산 남쪽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주문을 외울 단을 만들어주면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드디어 당
나라 군 50만이 서해를 건너니, 명랑은 계획대로 문두루법을 사용하여
큰 바람과 거센 물결을 일으켜 당나라 수군의 배를 모두 침몰시켰다. 당
나라는 다음해에 5만 수군을 다시 파견하였으나 이번에도 명랑은 문두루
법으로 이들을 막아냈다.
문두루법은 어떤 행법이었을까? 문두루법의 전거가 되는 『불설관정경
佛說灌頂經(佛說灌頂伏魔封印大神呪經)』에서는 그것이 풍랑을 다스리는 법이라
고 국한된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간 명랑은 풍랑을 일으키는 데 사용했
다. 명랑은 사천왕사에서 문두루법을 행할 때 유가종의 승려 12명을 불
러 함께했다고 한다. 『불설관정경』에 의하면 지름 77푼의 둥근 나무 기둥
에 오방신의 이름을 새겨놓고 주문을 외우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천왕사에는 둥근 구멍이 뚫린 12개의 초석으로 이루어진 방형 건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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