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19년 11월호 Vo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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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그곳으로부터 답을 찾으려 하는 시인들은 자연 속을 거닐며 자연과
스스럼없이 교감하고, 마음에 이는 파문을 주시한다. 그래서 자연을 관조
하는 일은 곧 자신을 들여다보는 명상이다.
생명경시가 만연한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상실과 불안감, 고
독과 소외감은 이미 위험수위에 와 있다. 때문에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고
통 받는 이들에게 가슴을 적시며 영혼의 울림을 주는 ‘자연과 명상’의 시
는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흐렸던 정신을 맑게 해준다. 아픈 영혼을 치유
시켜 주고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이 책이 던져 주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이 책에 실린 시인들은 자연친연성을 바탕으로 한 존재의 상호연기에
대한 깊은 천착을 드러내 보이는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다분
히 불교의 화엄적 상상력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므로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면서 빛나는 서정 세계를 일궈내고 있는 사유의 시들은 세상에 붙
지 말고, 세상을 탈 줄 아는 반야왕 거미의 지혜를 일러줄 뿐만 아니라 배
려와 연민, 그리고 공감으로 끊임없는 명상과 치유의 길로 우리를 안내한
다. 바로 여기에 실린 시들이 보여주는 치유의 힘이 있다.
모든 존재는 개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서로 물감처럼 번지며 또 다른
하나를 완성해 나간다. 여름이 번져 가을이 되고, 꽃이 번져 열매를 맺
고, 삶이 번져 죽음이 되고, 저녁이 번져 밤이 되고, 나는 네게로 번지는
것이다. 이것은 바뀜이 아니라 번짐이다. 결국 번진다는 것은 경계와 경
계를 무너뜨리는, 더 큰 하나로 전이되는 과정을 말한다. 즉 주고받음의
상쇄에 의해서 경이롭게 열리고 닫히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세계를 말한
다. 그래서 좋은 시는 마음으로 번져가는 시이고, 마음으로 읽는 시이며,
상생과 공감의 시로 읽히는 것이다. 이 책이 바로 좋은 시, 좋은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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