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19년 11월호 Vo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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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라 삶이다. 예컨대 우리는 모두가 생사의 이치를 깨달아 있으며
심지어 실천하고 있다. 누구나 어김없이 죽지 않는가. 깨닫고 싶은가? 아
서라. 쓸데없는 욕심이다.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내가 가는 어
디에나 도가 서 있다.
조주 : 불법이 있음을 아는 이는 어디로 갑니까?
남전 : 산 아래 신도 집의 한 마리 물소가 되는 것이다.
조주 :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전 : 어젯밤 삼경에 달빛이 창문을 비췄다.
남전 역시 조주문도 이후 조주가 깨달았다는 것을 간파한 눈치다. ‘어
젯밤 삼경에 달빛이 창문을 비췄다’는 대답은 조주가 자신과 교감할 수 있
을 만큼 경지가 드높아졌다는 암시다. 그렇다면 불법이 있음을, 곧 도를
깨달은 이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한 마리 물소로서의 삶이 그것이다. 언
젠가는 물소가 되어 물소로서 살게 될 것이다. 지구가 괜히 45억 살을 먹
은 게 아니다. 죽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번의 생을 윤회하다보면 반
드시 얻어걸릴 것이다. 티브이 속 동물의 왕국에는 물소가 단골로 등장한
다. 나처럼 노력하고 나처럼 측은하다. 마실 물을 찾아 폭염의 벌판을 터
벅터벅 걸어가는 물소의 발걸음이 생계를 기어이 버텨내려는 나의 발걸
음과 다르지 않다. 먹히지 않으려고 맹수와 사투를 벌이는 물소의 몸놀림
은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몸부림치는 나의 몸놀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을 버티면서 희로애락을 오간다는 점에서 나와 물소가 다르지 않다.
남전이 욕실을 지나는데 욕두浴頭가 물을 끓이고 있는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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