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고경 - 2019년 11월호 Vo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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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도자기 작업을 할 때는 오히려 소심한 면이 컸다. 실험을 한다고

            하긴 했지만 은연중에는 안정된 데이터로 가려고 했던 적도 많았다. 흙은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막상 치우려니 그 흙이나 유약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이제는 처음인 듯 아기의 발걸음같이 그러나 과감히 실패와 친구삼아

            사브작 사브작 걸어가 볼 생각이다. 생활을 줄이다보면 돈 들어갈 일도
            줄어들 것이며 애써 잘 팔리는 그릇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도자기 작업을 하는 도반陶伴이 있다. 지리산에서도 깊숙한 곳에 산다.
            스님들이 놀러오면 요즘엔 스님들도 이런데 안산다고 농담할 정도로 외

            딴곳이다. 그가 개띠라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여유롭기가 미얀마의 개팔
            자 같다. 기회가 되면 스승님의 작업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겠지만 난 스

            승님이 허리를 펴고 천천히 걷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늘 허리 펼
            새도 없이 뛰어다니시고 엄청난 작업량으로 단련된 분이시다. 그런데 제

            자는 완전 이단아인 셈이다. 아니 그동안 난 그런 줄 알았다. 그 흔한 티
            브이나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다. 불도 일 년에 제법 자주 때는 데도 이 집

            이 도자기하는 집일까 싶을 정도로 나무도 늘 달랑달랑하다. 뭐든 쌓아놓
            는 법이 없다. 도자기를 보관하는 창고는 말할 것도 없고 엊그제 불을 땠

            다는 데도 가보면 굴러다니는 도자기를 구경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느 날 작업하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은 진짜 그릇을 만드

            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저 큰손으로 어떻게 불빛에 대면 비
            칠 정도로 얇고 섬세하게 만들까? 안정된 데이터를 다 알고 있는데도 자

            신의 색을 찾기 위해서 과감한 시도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과감히 다
            깨버린다. 단순함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겠지 …. 몸과 마음이 정돈되면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가 보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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