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고경 - 2019년 11월호 Vo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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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 “무얼 하는가?” “목욕물을 데웁니다.” “이따가 물이 다
데워지면 물소에게도 목욕하라고 꼭 일러주게.” 저녁이 되어
욕두가 방장실로 들어왔다. “물소께서는 가서 목욕을 하시기
바랍니다.” “고삐는 가져왔는가?” 욕두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
느 날 조주가 문안드리러 오자 남전이 이날의 이야기를 들려주
었다. “제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고삐는 가져왔느냐.” 조주
가 불쑥 다가가 남전의 코를 틀어쥐고 잡아당겼다. 남전이 아
파하면서 말했다. “옳기는 하다만, 너무 거칠구나.”
산다는 건, 결국은 끌려가는 것이다. 죽음을 향해 끌려가는 것이다. 인
연이 수시로 멱살 잡으러 온다. 내가 성취했다고 하지만, 삶이 눈감아주
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했다고 하지만, 무엇이든 선택해야만 하는 것
이다. 군대에 가야할 때도 직장을 얻어야 할 때도 고삐가 나타난다. 물소
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남전도 그랬고 조주도 그랬다. 인생을 알든 모르
든 무조건 죽는다. 또 태어났다가 또 죽는다. 다만 죽기 전에 “맑게 갠 하
늘”을 가능한 자주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 살아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가
장 효과적인 방책이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웬만
하면 웃고 노래하자. 다시 말하건대, 열심히 생각한다고 세상 안 바뀐다.
남들이 착해지지도 않는다. 조주는 장난기가 많았고 어른인 남전은 너그
러웠다. 하염없이 끌려가는 데도, 어쨌든 재밌게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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