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고경 - 2019년 11월호 Vo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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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꿋꿋이 살아가는 것이

           도를 실천하는 길이다.



             ‘무기無記’란 인식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일컫는 불교의 용어
           다. 예컨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신神은 있는가 없는가’, ‘세상

           은 언제쯤 종말을 맞는가’와 같이,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영역의 주제를 가리킨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문

           제들이 사실 근본적으로는 ‘무기’일 수 있다. 문자로 기록되든 유튜브로
           표현되든, 사람은 밖으로 드러나고 설명되는 ‘유기有記’만을 파악할 수 있

           을 따름이다. 유기란, 무기라는 거대한 빙산의 작은 일각에 빗댈 수 있
           다. 곧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거기까지만 안다는 것일 뿐이다. 곰곰이 따

           져 보면, 책속의 지식이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아는 거고 언론이 그렇다니
           까 그런 줄로 아는 거다. 앎이란 그렇게 하나의 일정한 관점에 불과하고

           그 나이까지의 경험으로 쌓아올린 식견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그저 생각이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배불러지는 것이 아니듯 지식이 많다

           고 인생이 풍요로워지지는 않는다.


             무의미한 인생은 없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만들
           어가게 마련이다.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의미가 있고 병들고 죽으면 병들

           고 죽어서 의미가 있다. 나의 삶이 쾌락이 되거나 부러움이 되듯이, 나의
           죽음도 남의 쌤통이 되거나 교훈이 된다. 이렇듯 생로병사의 순간순간이

           전부 의미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그게 내게 유용한 의미이든 아니면 내게
           비참한 의미이든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애써 또는 구태여, 삶

           의 의미를 구할 필요가 없다. 내가 바로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도는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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