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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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아닐까 한다.
비형랑 설화의 서사적 틀은 비형랑의 존재론적 근거와 그에 따른 신통
력의 현시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은 왕의 혼령과 살아 있는 어
머니의 결합은 저승과 이승의 결합이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비형은 두
공간의 경계표지이자 매개자이다. 비형이 이승에서 맡은 과업은 귀신들
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특히 도깨비들을 부려 다리를 놓고, 성문을 세우
는 등 건축신으로서의 직능을 보여 준 점은 구술전승에서 도깨비가 하는
대표적인 행위와 일치한다. 도깨비는 한국인의 무의식적 심상을 드러내
는 대표적인 존재이다. 비형 이야기는 도깨비의 존재론적 근거를 보여 준
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편 처용이 등장한 헌강왕憲康王 대는 사치스런 왕경王京의 번영과 가
무歌舞의 성행 등으로 상징된다. 더욱이 이러한 번영의 모습이 뒤이은 진
성여왕眞聖女王 시기의 혼란과 분열의 모습과 이어져 있어 신라 멸망의 원
인을 헌강왕 대 사회에서 찾기도 한다. 처용설화 역시 이러한 헌강왕 대
정치 사회적 정황의 한 표상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 고故 고익진 교
수는 처용에 관련된 내용은 신라 상대 말기와 중대 초기의 초전기 불교의
건전한 호국룡護國龍 신앙이 신라 하대에서 타락하고 무속화하였음을 보
여준다고 해석하였다. 2)
벽사의 사전적 의미는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것. 또는 재앙을 불제祓除
3)
하는 일 이라 하였다. 또한 비보는 풍수 용어의 일종으로, ‘부족한 것을
2) 고익진. 『한국고대불교사상사』, 동국대학교출판부, 1989.
3) 한국고전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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