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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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물으니 그렇다면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진지왕은 순순히 물러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진지왕은 폐위되어 사망하였고 그로부터 3년
            뒤에 도화녀도 과부가 되고 만다. 그때 귀신이 된 왕이 생시처럼 나타나

            도화녀에게 옛 약속을 말했다. 결국 도화녀는 7일 동안 귀왕과 함께 지냈
            다. 도화녀는 임신했는데 그렇게 태어난 것이 비형랑이다. 이 말도 안 되

            면서 비범한 스토리를 듣고는 진평왕이 비형을 궁으로 불러 길렀다. 비형
            은 나이 15세에 벼슬도 얻어서 집사執事가 되었는데, 밤마다 궁성 밖으로

            나가 놀았다. 이에 왕이 병사를 보내어 살펴보니, 매번 월성月城을 날아
            넘어 서쪽의 황천荒川 언덕 위에서 귀신들과 놀고 있었다.

              왕이 그를 불러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게 귀신들을 부리어 신원사神元寺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게 하였다. 또한 귀신 가운데 정사를 도울만한 자를

            추천하라는 왕의 요구에 따라 길달吉達을 천거하였다. 길달은 각간角干 임
            종林宗의 아들이 되어 집사의 직무를 충직하게 수행하였으나, 어느 날 갑

            자기 여우로 변하여 도망하였으므로 비형랑이 귀신을 시켜 잡아 죽였다.
              그러므로 귀신들이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 달아나므로, 이후 사

            람들은 자신의 집에다 비형의 집이라고 글을 붙여서 액을 물리쳤다고 한
            다. 이 비형설화는 뒤의 처용설화處容說話와 유를 같이하고 있다.

              비형랑보다 세간에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이 처용이다. 『삼국유사』에
            서 처용은 동해 용왕의 일곱 아들 가운데 하나라 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헌강왕 5년(879년) 3월에 나라 동쪽의 주와 군을 순행巡幸하
            고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네 사람이 왕의 수레 앞에 와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다. 생김새가 해괴하고 옷차림과 두건이 괴상하였
            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산과 바다의 정령精靈이라 일컬었다.”라고 하여

            『삼국유사』와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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