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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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용모에 대한 묘사나 현존하는 처용탈을 근거로 처용이 페르시아

           사람이거나 혹은 이를 모델로 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신라
           까지 아랍의 상인이 찾아왔다는 기록도 많아서 역사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가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일단 현존하는 기록 어디에도 처용
           이 외국에서 왔다는 기록은 없어서 추정 단계에만 그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 처용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처용이 밤늦
           도록 서라벌(경주)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집에 들어가 보니 다른 남자가 아

           내와 동침하고 있었다. 처용은 화를 내기보다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물러 나왔다. 그러자 아내를 범하던 자가 그 본모습인 역신으로 나타나서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대범함에 감동하여 처용의 형상이 있는 곳이
           면 그 문안에 절대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처용의 얼굴을 대문 앞에 그려 붙여 역신의 방문을 피했다고 한다.



             이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비형랑은 누구인가? 또한 처용은 누구인가? 『삼국유사』를 연구하는 학
           자들 사이에서는 이 두 인물이 역사적으로 누구인가를 밝혀내기 위해 여

           러 가설을 내놓고 있다. 비형랑이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춘이라는 설, 혹
           은 김용춘의 형이라 일컬어지는 용수라는 설이 있고, 처용은 당시 울산지

           방에 있었던 호족豪族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혹은 당시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또는 경문왕가와 화랑의 친연성

           을 고려하여 화랑집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비형랑
           과 처용이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보다 구체적인 문헌이 나타나지 않는 한

           특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 실제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이 두 존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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