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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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병이야 병, 고쳐야 돼.”
이렇게 자기 병통을 꽉 찌르니 항복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죽자고 공부하다가 나중에 담당 스님이 병이 들어 열반하신 후에는 그
유언을 따라 원오극근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무슨 말을 걸어 보려고 하니 마치 절벽을 만난 듯 자기 공
부는 거미줄 정도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원오 스님이 자기의 공부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기색이면 그를 땅 속에 파묻어 버리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찾아갔는데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하, 내가 천하가 넓고 큰 사람 있는 줄 몰랐구나.”
크게 참회하고 말했습니다.
“스님, 제가 공연히 병을 가지고 공부인 줄 잘못 알고 우쭐했습니다.
문준 선사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잠들면 공부가 안
되니 어찌 해야 됩니까?”
“이놈아, 쓸데없는 망상하지 말고 공부 부지런히 해. 그 많은 망상 전
체가 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공부에 가까이 가는 법이야.”
이렇게 꾸중을 듣고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원오 스님 법문 도중에 확철히 깨달았습니다. 기록을 보면 ‘신오神悟’라
하였습니다. 신비롭게 깨쳤다는 말입니다. 그때 보니 오매일여입니다.
비로소 꿈에도 경계가 일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원오 스님에게 갔습니다. 원오 스님은 말조차 들어보지 않
고 쫓아냅니다. 말을 하려고 하면 “아니야, 아니야[不是不是].” 말을 하기
도 전에 아니라고만 계속합니다. 그러다가 화두를 묻습니다. ‘유구와 무
구가 등칡이 나무를 의지함과 같다[유구무구有句無句 여등의수如藤倚樹]’라는
화두를 묻는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환하게 알 것 같아 대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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