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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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그러나 그의 스승 우이 하쿠주宇井伯壽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선에
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이다.” 이렇게 아주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이것이
학자적인 양심입니다. 자기는 안 깨쳤으니까, 자기는 문자승文字僧이니
까 선에 대해 역사적 사실만 기록했지 선 법문, 선리禪理에 대해서는 절
대로 말도 하지 않고 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학자의 참 양심입니
다. 그런데 나카무라는 화두에 대해 딱 단안을 내리고 있으니 이렇게 되
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화두를 설명하려고 하면 불교는 영
원히 망해 버리고 맙니다.
여기에 덧붙여 화두의 하나인 ‘뜰 앞의 잣나무[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에
대해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선종에서 유명한 책인 『벽암록碧巖錄』에 송頌을 붙인 운문종의 설두雪
竇 스님이 공부하러 다닐 때 어느 절에서 한 도반과 ‘정전백수자’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보니 심부름하는
행자行者가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손님이 간 후에 불렀습니다.
“이놈아, 스님네들 법담法談 하는데 왜 웃어?”
“허허, 눈멀었습니다. 정전백수자는 그런 것이 아니니,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흰 토끼가 옛길에 몸을 눕히자 白兎橫身當古路,
눈 푸른 매가 언뜻 보고 토끼를 낚아 가네. 蒼鷹一見便生擒.
뒤쫓아 온 사냥개는 이를 모르고 後來獵犬無靈性,
공연히 나무만 안고 빙빙 도는 도다. 空向古椿下處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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