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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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의 잣나무’라 할 때 그 뜻은 비유하자면 ‘토끼’에 있지 ‘잣나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 눈 뜬 매는 토끼를 잡아가 버리고 멍
           텅구리 개는 ‘잣나무’라고 하니 나무만 안고 빙빙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전백수자라 할 때 그 뜻은 비유하자면 토끼에 있는 것이니 나무 밑
           에 가서 천년 만년 돌아봐야 그 뜻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

           금 전에 말했듯이 ‘화두는 암호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생각
           나는 대로 이리저리 해석할 수 없는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

           다. 화두에 대해 또 좋은 법문이 있습니다. 불감 근佛鑑懃 선사의 법문입
           니다.



                “오색비단 구름 위에 신선이 나타나                   彩雲影裏神仙現,

                손에 든 빨간 부채로 얼굴을 가리었다.                 手把紅羅扇遮面.
                누구나 빨리 신선의 얼굴을 볼 것이요                  急須著眼看仙人,

                신선의 손에 든 부채는 보지 말아라.                  莫看仙人手中扇.”


             생각해 보십시오. 신선이 나타나기는 나타났는데 빨간 부채로 낯을
           가리었습니다. 신선을 보기는 봐야겠는데, 낯을 가리는 부채를 봤다고

           해서 신선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화두에 있어서는 모든 법문이 다 이렇습니다. ‘정전백수자’니 ‘삼서

           근’이니 ‘조주무자趙州無字’니 하는 것은 다 손에 든 부채입니다. 부채!
           눈에 드러난 것은 부채일 뿐입니다. 부채 본 사람은 신선 본 사람이

           아닙니다. 빨간 부채를 보고서 신선 보았다고 하는 그 말을 믿어서 되
           겠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화두는 암호입니다. 이 암호 내용은 어떻게 해야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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