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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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말건, 뜰 앞의 잣나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물을 빨아들이고 햇살을 받

           아들인다. 또 다른 나무가 그렇고 언제 어디나의 나무도 그렇다. 뜰 앞의
           잣나무가 목숨을 다해 쓰러진 자리에 그 뜰 앞의 잣나무를 거름삼아 자라

           나는 뜰 앞의 잣나무도 그렇다. 뜰이 팔려서 건물로 개발되더라도 뜰 앞
           의 잣나무는 건물 로비의 관상수로 자라거나 주차장 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민들레로 자란다. 뜰 앞의 잣나무는 현상이 아니라 영원인
           것이다.



                “노승이 90년 전 마조대사 문하에서 80여 선지식을 친견하였

                는데, 모두가 솜씨 좋은 선지식들로서 가지와 넝쿨 위에 또 가
                지와 넝쿨을 만드는 지금 사람들과는 달랐다. 성인(부처님) 가

                신 지가 오래되어 한 대代 한 대가 틀리게 나날이 다르다. 남전
                스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이류異類 가운데서 행行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대들은 이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요즈음은
                주둥이가 노란 어린 것들이 네거리에서 이러쿵저러쿵 법을 설

                하여 널리 밥을 얻어먹고 절을 받으려 하며 300명이고 500명
                이고 대중을 모아놓고는 ‘나는 선지식이고 너희는 학인이다’고

                하는구나.”



             백련불교문화재단이 번역해 펴낸 <조주록>을 읽어보니, 뜰 앞의 잣나
           무 뒤에 제법 긴 설명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무슨 바람이 들

           었는지 조주는 평소처럼 시가 아니라 산문을 썼다. 아예 일장연설을 한
           다. 그답지 않은 부연이긴 한데,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한 의미를 좀

           처럼 알아먹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먼저 ‘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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