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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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도 변하지 않을 사실임을 안다. 늙어서 허리가 휘면 아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 대신 땅을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비록 하늘을 이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땅에서 벌어진다. 깨달

           음을 생각하고 깨달음을 우러러본다고 깨달음은 오지 않는다. 넘어지고
           뒹굴면서 크게 당해봐야만 깨닫는다. 노인들은 멀리 바라보는 대신, 주변

           의 쓰레기를 줍는다.



             뜰 앞의 잣나무는 대표적인 화두다.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화
           두다. 대개 절집 근처의 찻집에는 ‘뜰 앞의 잣나무’란 간판이 걸려 있다.

           불교공부깨나 한 이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문패에서도 심심찮게 목격했
           다. ‘조주’라는 이름난 스님이 진리라며 내놓은 물건이니, 흥미와 관심이

           아니 갈 수 없다. 한편으론 산뜻하고 한편으론 신비로운 어감도 유명세에
           한몫했을 것이다. 본래는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무라고 한다. 뜰 앞의

           잣나무의 원어原語는 ‘정전백수자庭前栢樹者.’ 여기서 ‘백수’를 잣나무로 잘
           못 번역했다는 지적이다. 조주 선사가 살았던 중국 백림선사에도 잣나무

           가 아니라 측백나무가 심겨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식물에 젬병이어서, 잣
           나무와 측백나무를 분간하지 못한다. 하긴 구분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어느 나무이든, 열매를 맺고 새에게 집을 내어주며 사람
           에게 베인다.



                점심 먹고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 공원에서 혼자 담배를

                피운다. 아름드리나무는 아름답기에 앞서 불쌍하다. 도망갈
                발이 없고 변명할 입이 없다. 저렇게도 사는데 못 살 것 뭐 있

                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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