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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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 ‘뜰 앞의 잣나무’를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이렇게 썼다. 제목

            은 ‘나무가 산다, 나무도 산다.’ 상당히 쓸 만한 독해였다고 이제껏 자부
            한다. 숲은 웅장하지만 나무 한 그루는 쓸쓸하다. 제아무리 몸통이 거대

            하더라도 혼자 서 있고 혼자 비 맞아서 쓸쓸하다. 그래서 홀로 감상에 젖
            거나 시를 쓸 때 좋은 글감이 된다. 남과의 비교는 매우 나쁜 습관이지만

            거기에라도 기대야 숨통이 트이는 때가 있다. 나무 한 그루는 나보다 더
            고된 것 같아서 위안이 된다. 이동과 방어의 권리를 가져본 적이 없는 그

            는 아주 사소한 고통이어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변호사도 사지 못한
            다.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열매를 맺으며, 가지가 꺾이고 잎이 상해도 뿌

            리는 건재하다. 힘들어도 살고 더러워도 살고 누가 뭐라 해도 산다. 불쌍
            하다고 해줘도 살고 구세주가 안 와도 산다. 뜰에 있는 나무는 뜰을 이용

            해 살고, 들에 있는 나무는 들을 파고들며 산다. 어떻게든 산다. 이보다
            굳센 정진을 찾기 어렵고 이보다 감동적인 현전現前도 드물다. 잣나무인

            지 측백나무인지, 조주가 무슨 나무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무를 본
            것만은 분명하다.



                “스님께서는 경계境界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경계란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단편적이고 일시적이다. 총체
            적이고 장구해야 하는 진리를 설명할 수단으로는 적절치 않다. 도를 구하

            는 자들은 대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도를 궁금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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