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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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1호 “ 무엇이 조사祖師께서 서쪽으
『조주록』 읽는 일요일 11
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나무가 산다 선문답의 묘미는 ‘하향적下向的’
나무도 산다 뜬금없음에 있다. 질문은 하나같이
거창한데 대답은 한없이 초라하다.
나이어린 제자들은 하늘에서 깨달음
곰글 불교작가 을 구하는데, 나이든 스승은 땅만 쳐
다보며 깨달음을 찾는다. 땅도 그냥
땅이 아니라 맨땅이거나 진흙탕이
다. ‘똥 막대기가 도道’라던 운문 선
사처럼, 똥을 파헤쳐 깨달음을 끄집
어내기도 한다. 묻는 입장에선 매우
허무할 법한데, 그래도 그게 엄연한
진실이니 어쩔 수는 없다. 나이 든다
고 반드시 철드는 건 아니지만, 나이
가 들면 무조건 철을 들어야 한다.
무거운 짐을 들듯이 노병老病에 비참
해지고 쓸쓸해진다. 삶이란 본디 더
럽고 치사하고 끙끙 앓는 것임을 절
감한다. 그게 단순히 실패했다거나
곰글 1975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밀려났다고 해서 나타나는 주관적이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9권의 불서佛書를 냈다. 고 즉흥적인 느낌이 아니라, 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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