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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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명주 혹은 온주 등지에서 출발 흑산군도, 고군산열도의 근해를 거쳐

            한반도의 하구로 들어가는 해상항로를 이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구법승들에 의해 신라에 소개된 차는 초기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

            로 쓰였다. 이런 정황은 『삼국유사』 「오대산보질태자전기五臺山寶叱徒太子
            傳記」에 “태자 보질태자와 효명태자가 예배하고 매일 아침 우통수 물을 길

            어다가 일만 진신 문수께 차를 끓여 봉양하였다[兩太子竝禮拜, 每日早朝汲于
            洞水, 煎茶供養一萬眞身文殊].”라고 한 점이나 흥덕왕 때 충담선사가 삼화령

            부처님께 3월3일과 9월9일에 차를 올렸다는 고사古事에서 드러난다. 당
            시 구법승들이 당에서 가져온 완품完品의 차는 귀중품이며 선진문물로 인

            식됐다. 차 문화 도입 초기 선종 구법승들이 들여온 차가 널리 확산하지
            못한 연유는 교학이 우세하여 새로운 수행법이 안착하기 어려웠던 시대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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