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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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던 간다라의 경제 상황, 여러 민족들

            의 동향動向 등이 촘촘하게 배어 있다. 사
            리기를 통해 초기 불상의 형태와 그 당시

            사회상도 엿볼 수 있다.
              카니슈카 대탑에서 출토된 사리기 뚜

            껑부분에 있는 삼존상(사진 1)은 무엇보다
            주목된다. 사리기에 새겨진 카니슈카 왕

            의 모습과 꽃줄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                     사진 1. 카니슈카 사리기.
            견할 수 있다. 부처님 열반 당시, 제자들이 꽃줄을 양쪽 어깨에 메고 행

            렬을 했던 바로 그 장면인데, 그 곳에 카니슈카 왕이 함께 꽃줄을 어깨에
            얹고 있다. 카니슈카 왕은 부처님 열반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 무려

            500여 년이나 뒤의 ‘후배’임에도 부처님 열반 당시 존재했던 사람인 양,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듯이 묘사되어 있다. 카니슈카 왕은 왜 부처님 열

            반식에 참여한 듯 새겨졌을까?
              먼저 쿠샨 왕조의 제3대 왕인 카니슈카 왕의 권력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왕조 성립 후 3대째 왕은 대개 강력한 왕권을 구축
            하고자 한다. 1·2대 왕들 시기의 국정國政에 상대적으로 불안함이 존재

            하고, 통치자는 왕조 창건에 공이 있는 신하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향이 적지 않다. 그러다 3대 왕이 등극할 무렵이면 왕조는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가고, 자연스레 ‘통치 권력 강화强化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카니슈카 왕 역시 ‘비슷한 문제’들을 고민했을 것이다.

              왕권 강화, 즉 통치의 정당성·정체성 확보에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전륜성왕과 자신을 배대配對시키는 것도 하

            나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카니슈카 왕은 아쇼카 왕과 같은 전륜성왕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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