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3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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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힘들고, 국교로 추진되던 신도의 체계로는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반박

            하기 힘들다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기관 설립·인재양성·건백서 제출 등 일본 불교계의 노력, 불교

            의 활용가치에 눈뜬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15)
            메이지 정부 관료들의 암묵적 동의 , 무엇보다 “왕법과 불법은 서로 어
            긋나지 않는다.”고 소리 높여 외친 회맹의 함성 등이 어우러지자 폐불훼
            석 정책은 점차 힘을 잃었다. 1877년 1월 주무부서인 교부성이 폐지되

            고, 1884년 8월 사원주지 임면任免 등이 각 종파 관장에게 일임되며 폐불
            훼석은 소멸되고 만다. 이후 ‘가장 세속화된 종교’이자 ‘왕법에 충실한 불





























                       사진 5. 『불교파시즘』.                 사진 6. 『전쟁과 선』.





            15)  이태승 지음, 『폐불훼석과 근대불교학의 성립』, 파주:올리브그린, 2020,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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