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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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또한 정치적인 덴노 숭배를 넘어서
지 못한다. 유교는 전근대의 봉건적 위
계질서의 연속성이 너무나 강하다. 그
가운데 전통적인 전근대의 사상이며, 게
다가 근대적 비판을 견딜 수 있는 사상
으로 변형 가능하며, 해석 가능한 유일
8)
한 사상이 불교였다.”
회맹의 대표들은 불교 존립의 새로
운 돌파구를 ‘바로 이 점’에서 찾았는지
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기독교 교리
를 연구해 그것을 배척하자.”는 과제를 사진 4. 제점숙 옮김,
『근대 일본의 종교
내걸었을 수 있다. 물론 불교세력을 유 담론과 계보』.
지하자는 목표도 내재됐을 것이다. 아
무튼 1877년 설립된 일본 최초의 관립 도쿄 대학에 신도학神道學을 전문
적으로 연구하는 ‘과科’가 없고, ‘불서 강의’라는 과목이 도쿄 대학 설립 2
년만인 1879년에 개설된 점도 ‘신도 국교주의’를 추진하던 메이지 시대
(1868-1912)에 이뤄진 일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이색적인 것’이 사실이
9)
다. “일본 근대 신도학의 시조로 추앙받아 마땅한” 다나카 요시에(田中義
能, 1872-1946)가 도쿄 대학에 재학할 당시[1903년 7월 졸업], 철학과 교수였
던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郞, 1855-1944)가 신도사 강의를 담당하고 있
8) 스에키 후미히코 지음·이태승 등 옮김, 『근대 일본과 불교』, 서울:그린비, 2009, p.19.
9) 이소마에 준이치 지음·제점숙 옮김, 『근대 일본의 종교 담론과 계보』, 서울:논형, 2016,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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