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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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수행 보다는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어 하는 ‘승적僧籍 있는 2

           세대·3세대 유발학생有髮學生’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 것도 당연한
           일, 종단별로 설립한 교육기관이 있으니 공부하고 온 것을 풀어낼 자리마

           저 있는 셈. 일본의 불교는 유례없는 속도로 세속화되고, 불교학은 성장
                                        할 탄탄한 토대를 구축하던 역사적 구

                                        간이 메이지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덴노 숭배’와 ‘신도 국교

                                        화’를 추진하던 메이지 정부 관료들이
                                        치우기 힘든 걸림돌이 있었다. 서양문

                                        명을 등에 업은 천주교 즉 기독교(혹은
                                        전파)였다. 덴노 제도와 기독교는 구조

                                        적·사상적으로 함께 하기 힘들다. ‘만
                                        세일계萬世一系를 강조하는 덴노’와 ‘인

                                        격적人格的 유일 신앙’의 만남은 양립보
                                        다는 충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는
        사진 3. 제점숙 지음,
        『식민지근대라는 경험-                    불문가지다. 그런데 정령숭배나 샤머
        식민지 조선과 일본 근
        대불교』.                           니즘과 비슷한 체계를 가진 신도가 기

           독교를 사상적·논리적으로 비판하고 극복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덴
           노 제도’나 ‘신도 국교화’에는 근대적 비판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논리가
                    7)
           부족했다.  반면 사상적 철학적 체계가 확실하고 분명한 불교는 이를 논
           리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신도는 논리가 너무나 취약하






           7)  스에키 후미히코 지음·이태승 등 옮김, 『근대 일본과 불교』, 서울:그린비, 2009,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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