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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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등록』 등을 열람하였고, 『금강경』의 하담여래荷擔如來라는 대목

            에 감명을 받았다. 24세 때 고봉에게 출가하였다. 출가해서는 초의草衣를
            걸치고 두타행頭陀行을 실천하였다. 26세 때 흘러가는 샘물을 보고 깨치

            고, 마침내 고봉에게서 사법하였다. 그 후로는 정처가 없이 배를 타기도
            하고 암실庵室에 기거하면서 자신을 환주幻住라고 일컬었다.

              승속이 모두 숭앙하여 강남고불江南古佛이라 불렀다. 연우 5년(1318)에
            인종황제의 부름에 응하지 않자, 금란가사金襴袈裟 및 불자원조광혜선사

            佛慈圓照廣慧禪師라는 호를 내리고, 원院에는 정종正宗이라는 호를 하사했
            다. 영종황제도 귀의하였다. 선사는 주지라면 도력道力·연력緣力·지력

            智力의 삼종력三種力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치 3년(1323) 8월 14일
            시적하였다. 세수는 61이고, 법랍은 37이다. 입적 후 7년에 문종황제가

            지각선사智覺禪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다시 5년 후에 순종황제는 『중봉광
            록』(30권)을 대장경에 편입하고, 보응국사普應國師라고 가호加號하였다. 『환

            주암청규幻住庵淸規』(1권), 『일화오엽一花五葉』(5권) 등의 저술이 있다.



              2. 수록된 저술



              중봉명본의 어록인 『중봉화상광록』(30권)은 자세하게는 『천목중봉화상
            광록』인데, 중봉명본이 찬술하고, 자적慈寂이 지원 원년(1335)에 편집하였

            으며, 홍무 20년(1387)에 중간重刊되었다. 원元의 원통 2년(1334)에 입장入
            藏을 상표上表하여 그 칙허勅許를 받고, 이듬해(1335) 누판鏤版되었지만 아

            직 광포廣布하기 이전에 이재罹災가 있었다. 이후 약 50년이 지나서 장자
            화張子華가 지호智暠·혜택慧澤의 두 선사와 함께 재간再刊하였다. 이 가운

            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문헌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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