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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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원주 스님이 보살이야. 대중 데리고 밭 매느라고 참 욕봤어. 그동
안에 어떻게 저 많은 밭을 다 맸어.”
가만히 보니 일이 틀린 모양이거든. 뭐 어쩌고 변명을 해요.
“이 도둑놈아! 누가 삯군 대라고 했나? 삯군 안 대기로 안 했나! 왜 봉암
사 규율을 깨버렸어?”
그만 당장 가라고 소리 질러 버렸지요. 이튿날 아침에 보니 새벽에 달
아나 버리고 없어요. 그렇게 좀 지독하게 했습니다. 나무를 하는데 식구
숫자대로 지게를 스무 개 정도 만들었습니다. 그래 놓고 나무를 하는데 하
루 석 짐씩 했습니다. 석 짐씩 하니 좀 고된 모양입니다. 나무하다 고되니
까 몇이 도망 가버렸습니다.
보다 못한 자운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러다간 대중이 다 없어져. 나뭇짐을 내려야 돼. 두 짐씩만 해.”
“뭐 어째?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살 거야? 사람 하나 가면 한 짐씩 올릴
참이야. 하루 석 짐 하는데 사람 하나 도망가면 넉 짐하고 둘 도망가면 다
섯 짐하고 살 거야.”
“그러면 안 돼. 다 도망가 버려.”
“그러면 자운 스님하고 내하고 둘이 남을 것 아닌가.”
“에잇, 나도 갈 참이야.”
참, 자운 스님, 처음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참으로 고생 많이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봉암사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면 왜 여태까지 살지 않았나?
가만히 보니 시절이 좀 잘못 돌아간다 말입니다. 나무를 베어다 켜서는,
책이 좀 있었는데 나무로 궤짝을 짜 가지고 책을 모두 궤 속에 넣었습니
다. 그래 놓고 향곡 스님을 시켜 트럭을 하나 가져오라 해서는 책을 밤중
에 실어다 향곡 스님 토굴인 월래月來에 갖다 놓았습니다. 6·25사변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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