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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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다녀야 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던 그가 국왕으로 즉위한 후, 부모의 원
찰로 현화사를 개창하여 초대 주지에 법상종 스님 법경을 임명한다. 그리
고 현화사를 법상종 사찰로 지정한다. 현종이 법상종을 적극적으로 후원
한 배경에는 그가 천추 황후를 피해 절을 전전할 때 그를 보호해 준 사찰
이 법상종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법상종은 고려 불교의 중심 종파로 부상하여 문벌 귀족들의 출가
가 이어짐에 따라 교단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문종은 정
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니 현종이 그의 증조曾祖이다. 그러므로 문
종이 법상종 스님 해린을 왕사로 삼았던 것이나 그가 절로 돌아갈 때 후
한 대접을 했던 것은 이와 같은 배경 때문이다. 더구나 해린에게 출가한
소현(韶顯, 1038-1096)은 문벌 귀족인 이자연(인주 이씨)의 아들이며 문종의
처남이다. 후일 소현은 법상종을 이끈 교단의 중심인물로 부상하였고, 문
종의 5째 아들 탱을 법상종에 출가시켜 교단을 장악했던 것은 인주이씨
의 현화사에 대한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다. 그러므로 문종이 현
화사로 돌아가는 해린을 위해 극진한 예를 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
이다.
특히 주목되는 왕의 예품으로 차와 금은으로 만든 기명器皿을 하사했
다는 점이다. 이는 왕실과 법상종, 승원 등에서 주도했던 차 문화가 정치
적인 함수 관계와 연관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기명에 대한 정보
는 서긍(徐兢, 1091-1153)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기명器皿)에
서 확인할 수 있는데, 고려에서 사용했던 기명의 종류로는 제기종류, 향
로, 물병, 술 잔류인 반잔[酒榼], 박산로, 주합酒榼, 정병, 탕호湯壺 등이 있
다고 하였다. 금은제(사진 2)로 만든 기명을 살펴보니 은으로 만들어 금칠
한 반잔[酒榼]과 은으로 만든 약병 면약호面藥壺가 있고, 차를 끓일 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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