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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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5호 | 선시산책 24 고려의 대각 국사 의천(1055-
대각 국사 의천
1101)은 선교 대립과 갈등을 원융회
통하고, 『법화경』의 ‘회삼귀일’ 사상
에 근거한 교관겸수 제창과 천태종
윤회를 을 열었다. “아들 넷이면 한 아들은
벗어나는 길 출가시켜야 한다.”는 국법에 따라 11
세의 의천이 자청해 출가, 개성 영통
사 난원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백원기 출가 후 의천은 숱한 어려움을 무
동방문화대학원대 석좌교수
릅쓰면서도 구법의 행각을 멈추지
문학평론가
않았다. 그런데 의천은 원효의 위대
함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으로, 원
효를 ‘해동교주, 원효 보살’로 극찬하
고 있다. 형 숙종이 원효에게 ‘화쟁
국사’란 시호를 내리게 한 것도 의천
이었다. 의천이 지난한 구도의 길에
서 한 줄기 광명이 되는 지남指南을
발견한 것은 원효의 『금강경소』를 만
난 덕분이었다.
옳은 말씀 꾸미지 않아도
백원기 전 국제포교사회 회장, 전 한국
불심에 들어맞거니
동서비교문학회 부회장. 저서로 『선시
의 이해와 마음치유』, 『불교 설화와 마음 분황사 스님 가르침에 따
치유』, 『숲 명상시의 이해와 마음치유』
등 다수가 있다. 라 경의 뜻을 찾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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