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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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백률사 이차돈 성사(506-527)의 사당을 참배하고 난 후 신명을 아
끼지 않고 불법을 펴겠다는 굳은 결의가 잘 드러나 있다. 염촉은 이차돈
의 자이며, 사인은 염촉의 벼슬이다. 1, 2행은 찾아 주는 이 없이 오랜 세
월 동안 외로이 남아있는 성사의 쓸쓸한 사당을 묘사하고 있다. 순교 후
5세기가 지난 의천의 시대에 불교는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
나 의천은 5세기라는 시공을 초월하여 옛날의 법난을 회상한다. 3, 4행은
이차돈과 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의천 자신도 불법수호를 위해 기꺼이 신
명을 바치겠다는 맹세와 성사의 거룩한 순교에 대한 추모의 상념을 표출
하고 있다.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스님이 되어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본보기를 위
해 인생의 부귀영화를 풀잎의 이슬같이 여긴 의천은 은거생활에서 단순
한 산수 경계의 범위를 넘어 출세간의 법열을 추구하고자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처의 길을 찾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다는 그의 지극한 구도일
념은 「부귀영화는 모두 봄 꿈」이라는 시에 잘 묘파되고 있다.
부귀영화는 모두 봄날의 꿈이요 榮華富貴皆春夢
모이고 흩어짐, 삶과 죽음도 물거품일 뿐. 聚散存亡盡水漚.
안양에 깃들일 마음 제외하고는 除却栖神安養外
아무리 생각해도 추구할 게 없구나. 算來何事可追求.
의천이 해인사에서 지은 이 시는, 왕자였던 그가 왜 출가를 하였는지
그 동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속세가 허망무실하다는 인식에서 그는 더
이상 세속의 일에 연연하지 않으리라는 결의를 다진다. ‘버리면 얻는다’는
말처럼, 출세간의 도는 세속의 영화를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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