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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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여 정토에 인연을 맺어 내생을 기약하겠다는 것이다. ‘안양에 깃들일

           마음 제외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추구할 게 없다’는 대목은 그 점을 한결
           명징하게 보여준다.

             ‘화경청적和敬淸寂’과 ‘명선茗禪’의 수행을 바탕으로 하는 다담선茶談禪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여 온 스님이 의천이다. 이 시기에 승려나 문인들

           사이에는 차가 중요한 선물의 하나였고, 차 선물을 받은 이들은 흔히 다
           시를 써서 화답하곤 했다. 의천은 「화인사다和人謝茶」라는 시에서 달밤에

           차 끓여 마시며 세속 근심을 잊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슬 내린 봄 동산에서 무엇을 구할 건가                  露苑春峯底事求
                달빛 아래 차 끓여 마시며 세상 걱정 잊는다.  煮花烹月洗塵愁.

                가벼워진 몸 삼동 유람도 힘들지 않고                    身輕不後遊三洞
                뼛골 속 으쓱하니 가을에 들어온 듯하네.                  骨爽俄驚入九秋.

                좋은 품격은 선문에도 합당하고                        仙品更宜鍾梵上
                맑은 향기는 시 읊고 술 마시는 일을 허락하네.  淸香偏許酒詩流.

                영단이 오래 산다는 걸 누가 보았는가                    靈丹誰見長生驗
                그대를 향해 그 이유 묻지 말게나.                     休向崑臺問事由.


             산중에서 수도하는 수행자들의 삶에 있어 차는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였다. 의천은 이슬 내린 봄 동산, 달빛 아래 차를 끓여 마시며 시름을
           달래고, 또한 좋은 차는 수행하는 절간에 잘 어울리고 맑고 그윽한 향기

           는 술과 시를 낳은 동인임을 말하고 있다. 차를 선물하는 마음씨도 아름
           답지만 차갑고 맑은 샘물을 길어 차를 달이는 그 마음에는 한 점 티 없는

           맑음이 존재함을 동시에 읽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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