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1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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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뒤편 언덕에 있는 ‘효대孝臺’는 화엄사를 세운 연

            기조사가 속세의 어머니가 그리워 차를 봉양한다는 전설 서린 곳이다. 이
            곳에는 4사자 3층 석탑이 있는데, 삼층 석탑을 떠받친 네 마리 사자 가운

            데 있는 분이 연기조사의 어머니고, 무릎을 꿇고서 어머니에게 차를 올리
            고 있는 분이 연기조사이다. 어느 날, 의천은 화엄사에 들렀다가 경내의

            ‘효대’에서 연기조사의 효심을 생각하며 상념에 잠겼을 터이다. 그 감회의
            서정이 「효대」에서 이렇게 노래되고 있다.



                적멸당 앞에는 빼어난 경치가 많고                   寂滅堂前多勝景

                길상봉 높은 봉우리 티끌조차 끊겼네.                 吉祥峰上絶纖矣.
                종일 서성이며 지난 일 생각하니                    彷徨盡日思前事

                날 저물고 가을바람 효대에 몰아치네.    薄暮悲風起孝臺.


              어느 면에서 불교는 출세간적인 종교로 효와 거리가 있는 것으로 오해
            를 받아 왔다. 사실, 불교는 효를 강조한다. 불교가 얼마나 인간적인 가

            르침이며, 효를 강조하고 있는가를 이 ‘효대’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하여
            가을바람에 낙엽이 지나간 세월의 잔해처럼 ‘효대’에 쌓일 즈음, 의천이

            절창한 이 시를 새긴 시비 ‘효대’는 숱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선승의 효심일 일깨워 주리라 생각된다.

              “머리털이 이다지도 희었는가! 학업의 수고로움 쌓이고 또 쌓인 탓인
            가?”라고 언급했듯이, 의천은 백발이 될 때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대중교

            화에 전념했다. 다음의 시는 단순히 육체적인 노쇠현상을 탄식하기라기
            보다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린

            의천 국사의 자책적인 심사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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