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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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는 동양고등여학교東洋高等女學校를 창설하여 불교교육을 현실적으로
           실천한다. 1918년 제국학사원 회원 선임, 1923년 명예교수, 1926년부터
           1928년까지는 대곡대학 제4대학장을 역임하고 1929년 타계했다. 호는 부

           주不住.

             무라카미는 그의 생애에서 보듯 자신의 학문적인 열정을 연구를 통해
           발표함은 물론 실제 사회에 회향시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불
           교강화소를 개설해 불교의 내용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던 것은 당

           시 학자적인 모습에서는 상당히 귀감이 된다. 이런 대중을 위한 포교의 모

           습은 무라카미가 도쿄에 입성 당시 철학관을 설립해 불교를 널리 알리고
           있던 이노우에 엔료의 집을 우선적으로 방문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
           각된다. 늘 공부하는 학자로서 연구에 몰두하지만 불교의 대중적인 포교

           도 잊지 않은 모습으로, 이런 노력의 결실이 동양고등여학교의 창립으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무라카미는 한 때 진종대곡파 승적을 박탈당하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종단의 개혁에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간접적으

           로 참여하였고, 그것에 대한 징벌을 받은 것이다. 두 번째는 그가 저술한

           책인 『불교통일론』의 내용이 정토진종의 교리를 우선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불교의 보편적 진리를 우선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생각해보면 조금
           은 기이하지만, 당시로서는 종단의 교학을 우선적으로 선양해야하는 분위

           기가 있었던 것 같다. 세 번째는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을 주장했다는 것으

           로, 대승불교가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붓다의 직설直說이 아닌 것을 논
           증한 것에 대하여 문제 삼은 것이다. 이상의 것들로 인해 무라카미는 종단
           으로부터 승적을 박탈당하지만, 이에 대해 당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글을

           써 대외적으로 분명하게 자신의 견해를 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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