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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量이 없는데 사량을 일으키게 하는 놈이 누구인가? 그것은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이다.
             특히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시 「아득한 성자」는 시집의 제목인 동시에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으로 무산의 대표작이다. 여기에서 무산은 하루만 살

           다 죽는 하루살이와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살아 있는 화자를 대립적 관계
           를 설정하여 순간을 살아도 깨달음에 이르는 자와 천 년을 살며 성자로 존
           경받아도 깨닫지 못하는 차이가 무엇인가를 절묘하게 드러내 보인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아득한 성자」 전문



             무산 시의 압권이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마치고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의 모습에서 ‘성자’를 발견한다. 하루살이가 어떻게 성

           자가 될 수 있을까? 상상을 뛰어넘는 선적 사유이다. 이것이 이 시가 주목

           을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뜨는 해도 다 보고 / 지는 해도 다 보았다”라는
           언설은 우주의 질서를 모두 터득한 하루살이의 하루를 의미한다. 그 하루
           살이에게 “오늘 하루”는 전체 생에 해당하는 시간이며, 내일이나 어제란 시

           간관념이 없다. 오늘 볼 것 다 봤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의 삶은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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