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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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내 편안한 마음은, 바다 속처럼 흔들리지 않는 내 마음은 언제나 그 자
리 그대로 변함이 없는 것임을 내비치고 있다.
선은 ‘이언절려離言絶慮’라 하여 모든 말과 생각을 끊어버리고 그 너머의
진리를 추구한다. 하여 무명을 깨뜨리기 어려운 장애를 비유할 때 “은산철
벽銀山鐵壁 같다”는 표현을 쓴다. 온 산이 흰 눈으로 덮이고 차디차고 단단
한 얼음으로 덮여 있어 철벽을 이룬 상태를 말하는데, 세상의 분별지 정도
로는 도저히 그것을 깨뜨릴 수 없다. 한 마디로 백척간두에 선 위급한 상
황인 것이다. 이러한 순간의 깨달음의 흔적이 「무자화無字話부처」에서 한결
잘 극화되고 있다.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 「무자화無字話부처」 전문
선승들은 불립문자라는 깨달음의 세계를 ‘무자화無字話’ 혹은 ‘무설설無
說說’의 방법으로 표현한다. 무산은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혹은 범람
하게 해놓고 그 강물에 떠내려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뗏목다리
와 같은 존재가, 아니 존재하지 않는 존재 곧 ‘허깨비’ 같은 존재가 ‘부처’라
고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강물도 없는 강물”을 흐르
게 하고, 범람하게 하고는 정작 “떠내려가는 뗏목다리”로 표상되는 “부처”
의 존재 속에 있다. “뗏목다리”는 분별심의 산물이다. 모든 삿된 것과 허망
한 것을 깨부수는 것이 선의 목적이듯이, 무산은 문자로 표시할 수 없는
진리를 ‘무자화’로서 그려내고 있다. 분별이 없는데 분별을 일으키고 사량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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