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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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하고, 거기다가 “몰현금 한 줄”은 탈 줄 아는 풍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몰현금은 줄 없는 거문고를 말한다. 줄이 없어도 마음속으로는 울
린다고 하여 이르는 말이다. 결국 마음을 비워야 그 비움 속에 많은 것들
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무산이 강조하는 것은 불교의 연기설에
입각한 생명연대 의식이다. 이는 곧 삼라만상의 존재들이 상호연대를 이루
며 내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친연성의 형상화를 상징한다. 이러한
만다라적 세상을 「산창을 열면」에서 분명히 드러내 보인다.
화엄경 펼쳐놓고 산창을 열면
이름 모를 온갖 새들 이미 다 읽었다고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로 포롱포롱 날고.…
풀잎은 풀잎으로 풀벌레는 풀벌레로
크고 작은 나무들 크고 작은 산들 짐승들
하늘 땅 이 모든 것들 이 모든 생명들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하나로 어우러져
몸을 다 드러내고 나타내 다 보이며
저마다 머금은 빛을 서로 비춰주나니…
대상에 대한 분별을 초월한 지점에서 세간과 출세간이 하나가 되어 어
우러져 조화로운 화엄의 세계가 멋지게 조형되고 있다. 『화엄경』을 “이름
모를 온갖 새들 이미 다 읽었다고”라고 한 것에서 말하듯이, 온갖 새들이
나무 사이를 날고, 풀과 벌레, 산짐승과 들짐승, 그리고 하늘과 땅 등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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