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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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불교에서 그 의타기성으로 세운 것에서 벗어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양수명은 생명의 흐름, 즉 은밀히 고요한 가
운데 나아가는 ‘쉬지 않는 전변’을 베르그송의 ‘진화’로 해석하였다. 객관 현
상은 아라야식의 쉬지 않는 전변으로서, 실재하지 않으므로 일종의 환유
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쉬지 않는 전변’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베르그
송 철학이나 유식 불교는 의타기성으로 세운 현상계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유식 불교는 일체의 현상이 모두 각종 인연에서 일어난
것이어서, 물속의 달과 같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물속의 달이 실재한
다고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의타기성에 의거한 견해이다. 의타기성에
서 벗어나면 그것이 환유임을 알게 된다. 양수명은 베르그송 철학이 유식
불교의 이러한 이치를 가장 적절히 설명해주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지속과 찰나생멸
양수명은 유식 불교를 활용하여 베르그송 철학의 해석을 시도하였는데,
이 때 둘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 나타난다. 베르그송 생명 철학의 근본은
바로 시간의 연속성에 있다. 이 시간은 수학적 시간도 아니고 외부의 여러
순간들의 집합도 아니며, 일종의 지속이자 그 중의 존재들이 상호 침투·
존재하는 유기적 통일체이다. “지속이란 과거가 미래를 잠식하고 불어나가
면서 전진하는 연속적인 진전이다. 과거가 끊임없이 증대하는 이상, 그것
은 또한 한없이 보존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기억이다. 생명은 고정적 실
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와 동일시되어 사건의 ‘연속적인
흐름’이 있을 뿐이다. 세계의 실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다수의 사건의 연
속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활은 연속적인 흐름, 즉 ‘지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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