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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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ce”이라고 보는데, 이는 유식 불교가 이 세계를 인간의 가장 근원적
인 의식인 아라야식의 전변으로 보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생명은 정신적인 에너지이고, 진화와 진보의 역동적 힘의 경향을
지니고 있는 비약 그 자체이다. 생명이라는 에너지는 의식과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우주의 하등 동물이나 식물에게 의식이 없다는 것은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수용되지 않는다. 단지 ‘의식이 잠들어 있는 상태’, 또는 ‘물질에 의
하여 최면에 걸렸거나 유혹의 마비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는 현상계
의 대상들, 동식물이나 무생물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을 아라야식의 현행으
로 설명하는 유식 불교의 입장과 일치한다. 아라야식의 현행으로서 동물과
식물, 생물과 무생물간에는 근원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수명은 「구원결의론究元決疑論」(1916년)에서 유식 불교와 베르그송 철
학의 상호 연관을 해석하였다. 양수명이 생각하는 세계는 생기론生機論적
인 것으로, 생성 그 자체 외에 배후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
이다. 그는 이 세계가 근원적으로 볼 때 ‘환유幻有’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인
정하였다. 이 세계는 ‘한 생각이 홀연히 일어난 것’이고 ‘인과가 서로 계속
되고 머물지 않고 흘러서 지금까지 이른 것’에 불과하므로, 실재성이나 고
정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같은 세계의 해석은 유식
불교의 ‘유식무경唯識無境’ 학설과 일치한다. 유식 불교는 외부 현상 세계가
실재한다는 학설을 논파하고, 아라야식 연기설을 통해 현상 세계를 찰나
생멸하고 흐름과 같이 항전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
를 실재성이 없는 환상, 한 생각이 일어난 것, 머물지 않고 계속 흘러가는
것으로 보는 것은 전형적인 유식 불교적 세계관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양수명은 베르그송의 학설처럼 ‘생명의 흐름’만이 실재하지만, 그 자체가
실재하는 물질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임을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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