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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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정의가 가능하고, 이는 현상계뿐 아니라 인간 정신에 있어서도 마찬
            가지로 지속적이다.
              유식 불교는 아뢰야식의 ‘상속전변차별相續轉變差別’을 통해 찰나마다 끊

            임없이 생멸하면서 이어지는 마음의 연속성[心相續]과 종자가 갖는 힘에 의

            해서 새로운 결과를 산출한다고 하는 변화성[轉變差別]을 동시에 설명하고
            자 하였다. 아라야식의 전변과 전식의 전변이 유기적으로 상호 원인[因]과
            결과[果]가 되는 연속적인 활동을 계속함으로써, 현상 세계가 전개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식 불교에서 우주는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지

            만, 실제로는 ‘다수의 사건의 연속’으로서 결코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양수명은 유식 불교의 식전변 개념을 통해 베르그송
            의 ‘지속’ 관념을 설명하였다.

              양수명이 지속과 식전변을 연결시키는 입장을 여징은 몇 가지 근거에서

            반대하였다. 첫째, 유식 불교는 시간과 유전流轉을 하나로 연관하지 않고,
            사물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발전되어오는 과정이란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
            이다. “과거는 저절로 소멸하여 현재까지 올 것이 없다. 현재는 정지하지 않

            으므로, 과거로 갈 것이 없다.” 둘째, 베르그송은 유기물과 무기물이 생명

            의 두 가지 서로 거스르는 운동이 조성한 것이라고 보았지만, 유식 불교는
            아라야식이 일체 현상의 종자들을 함장하고 있으며 종자는 자기와 같은
            동류의 현상만을 낳는다고 보았다. 셋째로 베르그송은 의식이 기억으로 과

            거의 경험을 보존하지만, 유식 불교는 의식의 ‘항전’이 ‘찰나마다 존재하는

            것’이고 찰나 생멸은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따로 보존할 방법이 없다는
            차이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이 파악하는 우주의 성격이 ‘지속’이
            라면 유식 불교는 ‘찰나 생멸’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상은 결정적

            으로 불일치한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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