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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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징의 이러한 관점은 베르그송이 우주 내에 두 상반된 운동인 상승 운
           동과 하강 운동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과도 연결된다. 베르그송의 우주는
           생명 에너지와 물질 에너지라는 두 상반된 방향성에 의해 대립되고 있으

           며, 생명 에너지는 상승하기를 바라고 물질 에너지는 하강하기를 바란다.

           ‘생명의 비약’은 생명의 에너지가 지니고 있는 창조의 바람을 뜻한다. 그러
           나 이 우주의 생명은 절대 자유의 에너지는 아니고 언제나 물질의 무게를
           안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생명체는 물질의 필연성과 생명의

           창조성 사이에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유식 불교에는 생명 에

           너지와 물질 에너지를 상반된 흐름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없다. 따라서 베
           르그송의 생명 철학을 그대로 유식 불교의 전변과 연관시키는 시각에는 무
           리가 따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맹목적 충동과 진심眞心의 흥기

             양수명 역시 베르그송 철학의 한계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다. 베르그

           송이 생명의 흐름의 원동력을 구하지 않고, 생명의 흐름인 이 세계가 ‘의타

           기성’인 동시에 ‘원성실성’임을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세계가 ‘청정 본연의 진심眞心이 홀연히 한 순간에 일어난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수명이 세계의 원동력으로 언급한 청정 본연의 ‘진

           심’에서 베르그송 철학과의 차이가 분명히 나타난다. 아라야식의 전변으로

           서의 이 세계를 ‘진심이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것은 진여연기설인데, 이같은
           세계는 베르그송이 말하는 생명의 무방향적인 충동이나 비약과는 전혀 다
           르기 때문이다. 양수명이 진심과 같은 의미라고 본 ‘에테르[以太]’는 그 곳에

           서부터 온갖 법계가 나오는 본체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베르그송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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