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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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명 전집』. 濟南:山東人民出版社, 2005.
맹목적인 충동으로 드러나는 우주는 당연히 도덕적 질서를 가질 수 없고,
생명의 무방향성의 난폭한 흐름일 뿐이다. 반면에 유식 불교는 아라야식
을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 봄으로써, 현상계의 오염을 설명하는 동시에
깨달음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깨달음의 여부에 따라 이 세
계는 의타기성이며 동시에 원성실적인 양면성을 가지게 된다. 이 세계는 오
염된 것인 동시에 참된 것이 된다.
양수명은 기본적으로 유식 불교와 베르그송의 생명의 세계관이 일치한
다고 보았다. 우주를 고정적 실체가 아니라 사건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보
는 것 자체가 바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를 사건의 연속
적인 흐름, 생명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은 유학, 특히 송명 성리학
의 전형적인 사유 방식이다. 우주를 물질 에너지와 정신 에너지라는 서로
상반된 두 힘의 균형으로 파악하는 사상도 『주역』에 원래 함축되어 있던
것이다. 베르그송 철학을 활용하여 전통철학을 설명하는 것은 전통철학
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베르그송 철학과 유식 불교의 우
주론을 비교 설명하는 방식 역시 상호 이해에 도움이 되고, 동서 철학의
유사성 및 차이를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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