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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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열전東師列傳』 등 역사서뿐 아니라 『경훈기警訓記』 『유경경기遺敎經記』
            『동시만선東詩漫選』 『사십이장경기四十二章經記』 등을 남겼다. 근대에 대흥사
            문중에서는 『범해선사유고』를 출판하여 세상에 반포했다. 앞에 열거한 저

            술의 규모에서 드러

            난 것처럼 경전과 역
            사서, 시문 등 다양
            한  부분에  관심을

            가졌던 수행자였다.

              그의 차 생활 규모
            는  초의의  영향을
            받아  「동다송」을  애

            송愛誦했으며,  초의

            의  차  만드는  법을
            곁에서 봤던 인물이
            었다. 그러므로 그는

            대흥사의 다풍을 이

            은 승려였지만 초의
            가  이룩한  차  문화
            의 중흥을 지속적으
                                사진 2. 초의 스님 영정, 김호석 화백 그림.
            로 발전시킬 여력은

            부족했던 듯하다. 이는 그가 차에 대한 이해나 열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기보다는 근대로 이어지는 격변기 속에서 새로운 음다층을 확보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이는 시대의 한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

            악한 상황에서도 차의 가치를 노래한 다시茶詩는 근대 대흥사의 음다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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